최건수 <작가 인터뷰: 한국사진의 뉴프론티어>: 미술시대 2006년 11월호

<미술시대 2006년 11월호>

한국사진의 뉴프론티어, 최건수의 사진 토크, 이주형

최건수 | 사진평론

Q.최건수 : 영화. 사진. 회화는 표면적으로 매우 비슷해 보이나 영화와 사진이 이미지의 민주화 측면에서는 회화에 비해서 진전된 매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회화가 재현성 외에 다른 미학적 가치를 일찍이 깨달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진과 영화는 정지냐 동적 이미지냐 만 다를 뿐 그 뿌리는 한 뿌리라 할 수 있겠지요. 당신은 영화에서 사진으로 진로를 바꾸었는데, 이미지를 다루는 측면에서 사진과 영화는 당 신에게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A.이주형  : 상업영화 틀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겠지만, 오래전에 앙드레 바쟁이 말했던 것처럼 영화의 근원은 사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두 매체가 가진 차이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느끼는 부분을 언급한다면 사진이 가지는 물성에 관한 것입니다. 영화는 요즘 같으면 DVD로 구입해 소유할 수 있겠지만, 그 자체가 물성을 가지진 않습니다. 영사되거나 플레이되는 동안 환영처럼 스크린이나 모니터 위에 명멸할 뿐인 것이죠. 아무리 근사한 장면이 지나가더라도 영원히 고정시킬 수 없습니다. 또한 그러한 이미지 역시 영화 한편을 구축하는 수많은 이미지 중 하나일 뿐인 것입니다. 

   영화 한편을 보고나서는 유독 하나의 장면이 강렬하게 떠오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 사진 이미지와 유사해 보이지만 그 장면은 영화를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사진은 이미지 하나를 통해 그 어떤 전체상을 더듬어가게 됩니다. 일련의 시리즈로서 사진작업이 이루어진다면 보다 구체적이 되겠죠. 그렇더라 하더라도 사진은 결국 영화와는 그 상징화의 측면에서 대척점에 놓이게 되며 빛으로 명멸하는 환영으로서가 아니라 눈앞에 하나의 물건으로서 지속적으로 남아있는 물성의 이미지가 된다는 생각입니다.

   어디에선가 사진은 존재증명임과 동시에 부재증명이라는 언급을 본 적이 있습니다. 사진은 인식론적인 측면에서 매우 모호한 매체라고 생각하며 그 때문에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어떤 매체보다도 현실의 유사상을 재현하지만 현실 그 자체는 아닌 것이죠. 이러한 지점만큼 불가해한 것이 어디 있을까요. 현실과 닮은 그 모습이 전후 맥락도 없이 제시될 때 우리의 지각과 인식은 더듬거리게 됩니다. 이미지들이 집적되어 인과관계를 갖거나 충돌하며 의미화 되는 영화 안의 사진 이미지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Q. 최건수: 다시 영화를 하고 싶은 마음(동적 이미지)은 없습니까? 지금 박사 과정에서 미디어 아트를 공부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신지?

A. 이주형  : 본격적으로 사진을 전공하기 이전 영화를 꿈꾸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파편처럼 기억되는 단서들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일식‘과 같은 영화의 마지막 10여분 이어지는 숨막히는 몽타주이거나 제리 셔츠버그의 ’허수아비‘나 빔 벤더스의 일련의 영화들이 드러내는 로드무비 형식이 지니는 생과 현실에 대한 시선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안토니오니의 경우 그것이 몽타주이건 ’여행자들‘에서 드러나는 긴 롱 테이크이든 대게 그 시선은 생의 부조리와 불가해함을 향하고 있습니다. 제 사진작업에 이러한 경험이 크게 반영된 부분은 없지만 그 어떤 불가해함, 불가지론적인 입장에서 대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의식만큼은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외적으로 발표한 적은 없지만 뉴욕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하는 동안 제가 작업했던 매체는 사진만이 아닙니다. 사진과 함께 비디오 매체를 활용한 작업도 병행했었죠. 다만 그 시기의 비디오 매체가 갖는 기술력과 퀄리티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사진이 갖는 작업의 완결성 있는 마무리와 비교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 동안 비디오 작업에 손을 대지 않고 있었지만 최근 들어 사진이 갖는 미학적 특징들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서의 비디오 작업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숭실대 박사과정의 미디어아트 전공은 이러한 관심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특히 연속된 사진이 갖는 시간성의 문제를 비디오 작업을 통해 풀어보고 싶습니다.

Q. 최건수  : 풍경은 당신이 좋아하는 소재 같군요. 다만 F64 그룹의 풍경처럼 선명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은 아닌 것 같군요. 당신에게 풍경은 무엇입니까?

A. 이주형  : 풍경을 대상으로 삼게 된 계기는 1992년 홍대 대학원 시절 배병우 선생님의 수업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것 같습니다.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의 대상으로서의 풍경이 아닌 다의적이고 모호한 생에 대한 인식에 대한 시각적 은유로서 풍경을 의식하게 된 것이죠. 특히 풍경에 대한 로버트 아담스의 미니멀한 어프로치를 무척 좋아하고 영향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94년의 ‘침묵의 풍경’이라는 첫 개인전은 이러한 관심의 결과입니다. 

기억의 풍경 054, 1999

기억의 풍경 054, 1999

Q. 최건수 : 제가 당신의 사진을 처음 본 것은 99년 갤러리 룩스의 개관 기획전에 나온「Landscape of Memory」시리즈 중 몇 점이었지요. 작품의 구조는 두 점의 사진을 하나로 묶은 딥틱(diptych) 형태로 장난감 사진기(toy camera)를 이용해서 찍은 것 같이 보였습니다. 전경 없이 흐릿하게 영상이 잡혀있고, 두 장의 사진이 격자 형태로 구성 된 것이 달리는 기차에서 뿌연 창문을 통해 밖을 보는 ‘파노라마’ 시각을 보는 느낌이었지요. 그것을 당신은 ‘기억’이라는 단어로 갈무리 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보는 저로서는 ‘데 자뷰’ 느낌이 들었고..,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설명이 필요 할 것 같습니다. 왜 그것이 딥틱이어야 하는지, 왜 toy camera를 써야했는지, 파노라마 시각은 당신에게 어떤 것인지 등...  

A. 이주형  : 앞서 언급했듯이 그것이 자연이건 도시이건 대개 제 작업은 풍경이라고 하는 장르적인 시각적 특징을 갖습니다. 하지만 현실 대상을 표상하거나 명시하는 직접적인 방식이 아니라 현실의 장소성이 지워진 익명의 풍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억의 풍경’ 시리즈의 작업 계기는 뉴욕근대미술관 MOMA 의 19세기 사진 콜렉션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퇴색되어 가는 사진들의 표면이 드러내는 지난 시간에 대한 환기가 마치 소멸되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듯이 느껴졌습니다. 우리의 기억이 점점 모호한 형태로 남겨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죠. 오랜 시간이 쌓인 빈티지의 느낌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보려고 했던 한 동안의 노력이 토이 카메라의 사용이나, 딥틱의 구성, 프린트의 표백 같은 테크닉의 사용을 끌어낸 것 같습니다.

자취 211be, 2007

자취 211be, 2007

Q. 최건수: 자연의 한 부분에 인공적 구조물을 삽입 시키고 있는 것(침묵의여행,94 / Landscape of Memory, 99/시간의 끝,2003)에서 영화의 세트장 (Invisible Memory,2004) 이나 지금까지 남아있는 근대건축(Modernscape,2006)같은 건물로 관심이 이동되고 있습니다. 부연하자면 경험 된 자연에서 건축물이 담긴 사회적 풍경으로 관점의 이동이지요. 이러한 풍경에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 같군요.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미세한 역사 아닙니까? 개인적인 것도 마찬가지 경우이지만 당대보다 지나간 시간에 관심을 갖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A. 이주형  : 거시적인 것보다는 미시적이고 디테일한 부분에 관심이 가게 되는 것은 아마도 부여된 성향 탓이 아닐까요. 거대하고 위대한 이야기보다는 사소해 보이는 것들을 통해 은근히 발산되는 낯선 파문 같은 것에 끌리는 편입니다. 마치 음악에서 교향곡이나 관현악곡 보다는 4중주, 3중주 나아가 독주를 즐겨듣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 근대건축에 대한 관심은 아직 확실하게 정리된 상태는 아니지만 그 안에서도 상당히 제한적인 범위로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편입니다. 아마도 기준은 근대건축이 드러내는 동시대의 미의식의 발현과 동시에 그 시대의 미세한 상징으로 우리의 역사적 기억을 환기시킬 만한 대상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미세한 역사를 통해서도 충분히 큰 이야기의 흔적을 드러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지나간 시간에 대한 관심은 아마도 생에 대한 집착과 미련이 많아서일까요. 

Q. 최건수: 많은 사진이 핀 홀이나 토이 카메라 등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흐리고, 세피아 혹은 단일 색조를 쓰는 작업(coney island)은 과거나 비현실적 이미지를 드러내고자 하는 전략입니까?

A. 이주형  : 현실감을 지워내어 사진의 모호한 시공간을 강조하려 하는 방법론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로서는 너무 인위적이 아니었나 반성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Q. 최건수: 「Wonderland」를 포함하여 이러한 이미지는 과거에 대한 향수, 기억, 서정성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는 성공적 시도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가 너무 미시적이고 개인적 관점에 머물러 사회적 이슈가 될 담론의 생산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보편적인 인간의 내부적 문제에 대한 천착이나 더 큰 이슈가 필요하다고 느끼지는 않는지요?

A. 이주형  :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관점이라는 부분에 동의합니다. 이에 대한 반성이 역사적 기억을 보다 본격적으로 의식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Q. 최건수: 최근의 작업 방향이 근대건축에 쏠려있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이 시대의 건축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A. 이주형  : 지금까지의 작업을 지탱해온 키 워드인, 시간, 기억, 소멸, 익명성에 더하여 그 연장선상에서 미시적일지언정 구체적 담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역사성을 드러낼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심미적이면서 동시에 역사적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5~60년대의 모더니즘 건축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주체적으로 형성되지 못한 우리의 모던이 지니는 상징으로서 보편적인 미적 대상과 실패한 시대성이 절충되는 소멸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그 시대를 시각적으로 표상하는 가장 적절한 현실의 대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최건수: 작업과 직접 관련 없는 질문 하나를 드리고 끝낼까 합니다. 사진의 발명 이후 사진은 최대의 변혁기를 맞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디지털의 등장이겠고 예술의 영역에서는 매체가 섞이는 하이브리드한 작품이 사진 고유의 영역을 침투해 들어옵니다. 지금은 새로운 관점의 시각적 위상이 요구되는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혼란기에 미술대학에서 사진을 가르치고 계시는 입장에서 어떻게 후배들을 교육하고 계시는지요. 

A. 이주형  : 사진이라는 매체 안에 갇힌 좁은 시야가 아닌 시각예술 및 영상 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폭넓은 시야를 갖도록 유도하는 편입니다. 특히 인문학적인 소양을 강조하는 편이지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진동선 <이주형, 독특한 색깔의 사려 깊은 사진가> 사진예술 2006년 3월호

<사진예술 2006년 3월호>

이주형, 독특한 색깔의 사려 깊은 사진가 

진동선 | 사진평론가

8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 한국사진은 이전에 비해 학문적 토양들이 현격히 비옥해진 새로운 토양과 만나게 된다. 바로 그 초석이 사진이론에 대한 열정적 탐구이다. 이곳저곳 대학원에 사진전공이 새롭게 개설된다. 그러나 심도 깊은 사진이론 교육에 대한 갈증과 욕구가 분출되면서 학교 교육으로는 만족하지 못한 학생들, 또 제대로 한번 사진을 가르쳐보자는 탄탄한 이론으로 무장된 젊은 교육자들이 이곳저곳에서 사진공방을 만들기 시작한다.

    1987년 홍대 근처에 “포토셀(Photo Cell)”이라는 사진 공방이 있었다. 서교아파트와 국민은행 사이길로 홍대 전철역을 향하다 보면 서교동 성당과 서교초등학교로 갈리는 사거리 좌측 흰색 건물 2층에 포토셀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6평 남짓 공간에 전체가 코닥 노란색으로 칠해진 그런대로 아늑하고 아담한 공부방의 모습이었다. 포토셀의 운영자는 나였다. 그때 나는 홍대 대학원 4차 학기였고, 학과 후배인 2차 학기 김영성, 이유종 그리고 1차 학기 조명수와 더불어 이 사진공방을 운영했다.  

    포토셀이 만들어진 것은 앞서 언급했던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석사 과정자답게 제대로 사진이론공부를 해보자는 뜻이었고, 하나는 이렇게 공부한 지식을 새롭게 사진의 길을 들어선 사람에게 제대로 한번 가르쳐보자는 뜻이었다. 물론 첫 번째 이유가 포토셀이 나타난 큰 이유였다. 홍대 대학원은 지금과는 다르게 그때는 척박한 교육적 환경이었다. 야간에 개설된 특수대학원이었기에 전용 강의실 하나 없는 열악한 시설이었다. 또 상당수 학생들이 학문연구보다는 졸업장을 위해 다녔기 때문에 전혀 면학 분위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때문에 대학원에서 심도 깊은 학문 연구를 염원한 학생들은 학교 주변에 작업실 개념의 공부방을 마련하고 싶어 했는데 포토셀이 바로 그런 모습이었다. 공방을 통해서 학문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보자는 취지였다.

    포토셀은 1년 반 정도 유지되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지탱할 수 없었다. 많지 않은 운영비지만 수입원이 전혀 없었고 그나마 도움을 주었던 동료들이 학위 과정을 마치고 떠나갔기 때문에 오래 지속될 수는 없었다. 포토셀은 딱 한번 운영비 마련을 위해 사진 워크숍을 개최한 적이 있었다. 바로 1987년 <포토셀 여름 사진 워크숍>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되는 프로그램이었으나 그때는 학생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제대로 한번 가르쳐보자는 생각에서 사진학, 사진사, 사진화학, 사진기계학, 작가론 등 그럴듯한 모양을 갖춘 아카데미 사진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주형은 그때 만난 수강생이었다. 9명의 워크숍 수강자 중의 한사람이었다.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출신으로서 사진동아리 "하이포"에서 활동을 했으나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해보고자 포토셀을 찾았다. 이주형 말고 또 한사람 열정적인 학생이 있었는데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한 정현자이다. 이주형은 그때 말이 없는 학생이었다. 그때도 차분하고 조용했다. 과연 연극영화를 전공했을까 싶을 정도로 내성적인 성격을 가졌다. 그는 열심히 공부를 했다. 무더운 여름이었는데도 12주 코스를 끝까지 마쳤다. 수업 중에 인상적인 질문을 했다는 기억은 없다. 하지만 사진을 학문으로 다가서려는 진지한 학구파의 모습이 지금도 새롭다.

    이후 우리는 상당기간 동안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를 다시 보았던 때는 그로부터 6년의 세월이 흐른 1991년 봄 신사동에 위치한 사진교습소 "거울과 창"이었다. 거울과 창은 당시 돈벌이를 위해 만든 나의 무허가 사진학원이었다. 대학원을 졸업했으나 사진으로 아무런 일도 못하고 단 돈 일원도 수입이 없었던 때라 배운 지식을 활용하여 입시지도라도 해보겠다는 생각에서 사진가 박진호와 함께 신사 전철역 부근 놀이터 언저리에 만든 사진 교습소였다. 그러나 내게는 그곳 "거울과 창"이 "포토셀"에 이어 두 번째 지식의 터전이었다. 또 유학의 꿈을 키운 열정의 무대이기도 했다. 어느 날 "거울과 창"에 이주형이 낯선 청년과 함께 찾아왔다. 그때의 낯선 청년이 바로 사진사 분야에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는 사진이론가 이경민이다.

    두 사람에게 사진이론을 가르쳤다. 모두 명석했기에 공부하는 자세로 강의를 진행했다. 둘 다 조용하고 신중했다. 그들은 한양대 사진서클 "하이포" 선후배 관계였다. 선배 이주형이 정서적이고 포용적이었다면 후배 이경민은 이성적이고 비평적이었다. 우리는 서로 선생, 제자 사이가 아닌 선배, 후배 관계로 학문의 우애를 다졌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침묵의 여행 021, 1992

침묵의 여행 021, 1992

그때 이주형의 사진을 딱 한 차례 본 적이 있다. 야트막한 건물이 있는 변두리 풍경의 흑백사진이었다. 사진은 그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그가 기억할런지는 모르지만 사진을 보면서 으젠 앗제를 말해준 기억이 있다. 그의 사진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게 없다. 요란하지 않은 조형, 시간성이 묻어나는 감각적인 사진이었다. 그는 자신의 음색을 갖고 있었다. 안온하고 편안한 회고적 이미지였다.

    수업은 반년을 넘기지 못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교습소 문을 닫아야 했고 나중에는 남의 학원을 빌려야 했다. 우리는 또 다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 이주형이 홍대 대학원에 진학 했을 때 나는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내가 미국 유학에서 돌아왔을 때는 그가 유학을 떠났다. 우리는 평론가와 작가의 관계로 만나게 되었다. 그는 성숙한 작가로 성장해 있었다.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는 작가로 자리했다. 서로 사진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없지만 그는 개성있는 작가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기억의 풍경 055, 1998

기억의 풍경 055, 1998

우리가 깊은 대화를 나눠본 것은 2001년 하우아트 갤러리의 <앗제가 본 서울>이었다. 나는 기획자로서 그를 초대했다. 사진의 코드가 앗제의 사진 코드와 유사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사진이 앗제의 세븐 앨범 카테고리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시간을, 기억을, 존재의 부재를, 그리고 그 부재를 환기하고 있었다. 그의 사진은 사라질 역사, 사라진 역사 이미지를 이야기했다. 나는 그것들을 보았고 그의 독특한 음색과 시선이 "앗제의 시선이 되어 바라본 서울 이미지"에 더할나위 없이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그의 사진세계를 제대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의 사진적 음색 침잠하는 침묵의 이미지, 무엇보다도 정적의 뜰 안에 뿌려진 회상적 분위기를 지켜볼 수 있었다. 이것들이 사진적 강점이 되기에 충분했다. 또 컨셉이 분명했기에 흑백이건, 컬러건 색깔이 분명히 드러났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고, 또 자신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성격이 분명한 사진을 보여주고자 했다.

시간의 끝 ds 01, 2003

시간의 끝 ds 01, 2003

 이따금 그런 내면으로 흐르는 서정적 이미지, 침묵과 정적을 즐기고, 또 지나간 시간의 공명을 더듬는 회고적, 서정적 이미지가 진부함과 단조로움을 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그의 사진은 개성 있는 색깔, 그만의 독특한 음색을 보여주기에 손색이 없었다. 자신의 색깔을 견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나치면 "지루하다"는 소리를 듣고, 변화가 심하면 "가볍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주형은 변화하되 일관성 있는 자기 색깔을 보여준 작가였다.

보이지 않는 기억 005, 2005

보이지 않는 기억 005, 2005

최근 변화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표현 영역이 넓어지고 매체로서 사진에 대한 인식도 이전에 비해 달라졌다. 아마도 사진의 새로운 시대적 환경 때문으로 보인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그는 시간성과 역사성을 주요 키워드로 삼는다. 또 시간 안에서 삶의 단상과 현대적 풍경에 천착한다. 최근 그는 사진에 대한 이야기보다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부쩍 한다. 또 한국사진의 부실한 인프라와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한다. 그때마다 그가 보여주는 진지함과 사려 깊은 태도에 놀라게 된다. 작년 9월 현대사진연구소를 출범할 때 그에게 맨먼저 협조를 구하고 조력자가 되어주기를 희망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조용하고 사려 깊다. 또 세밀하고 부드럽다. 그의 작가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늘 진지하고 생산적인 사유에 대해서 감동한다. 예측할 수 없는 한국사진의 제 문제들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함께 사유할 수 있는 끈끈한 동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할 때가 있다.

육영혜 <외관 너머에 존재하는 곳, 달성공원을 찾은 사진가> 줌인 2004년 6월호

<줌인 2004년 6월호>

외관 너머에 존재하는 곳, '달성공원'을 찾은 사진가

육영혜 기자


마임을 보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임의 세계에 들어서야 한다. 음성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몸짓과 표정 만으로 표현하는 연기인 마임을 한 걸음 물러서 그저 관망한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 없는 움직임일 뿐이다. 마임의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에 동참하게 위해서는 그들의 언어를 수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진의 세계는 어떠한가? 사진을 보고 이해하려면 사진의 세계와 사진을 찍은 사진가의 세계에 들어서야 하지 않을까? 

    소리 없이 이미지로 표현되는 사진은 자칫 그 외관 만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외관의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면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사진가 이주형은 외관 너머에 존재하는 새로운 인식의 세계를 차분하게 담아내고자 한다.

그가 찾은 곳 <달성공원>

달성공원은 대구 시내에 위치한 공원이다. 서울이 연고지인 그에게 있어 달성공원은 그저 대구에 있는 공원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어느 기획전시에 참가하게 되면서 인연을 맺게 된 달성공원은 그에게 있어 처음엔 몹시 낯선 곳이었다. 위치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그곳을 찾아나서기 위해 정보를 모으기 시작하면서 단순히 공원으로 여겼던 그곳, 달성공원이 역사적으로 의미 깊은 곳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달성공원이 역사가 담긴 곳임을 알고있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저 적당한 시기에 만들어진 공원이려니, 그곳을 찾으면 동물원이 있고, 여느 공원과 마찬가지로 쉼터가 있는 그런 곳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달성공원은 대구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공원이다. 원래 대구의 옛 부족국가였던 달구벌의 토성 '달성'은 사적 제62호로 261년, 우리나라 성곽 발달 사상 가장 이른 시기에 축성된 성곽으로 '달성공원'이라는 이름도 바로 그 토성에서 유래한다. 공원 곳곳에는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의 동상과 일제강점기를 살다간 민족시인 이상화의 시비 등 대구를 대표하는 큰 인물들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여러차례 역사의 흐름과 함께 증축되어 온 달성공원은 근세 도시 발달과 더불어 1900년대 초 공원으로 조성되었으며 1960년대 후반 본격적인 공원조성과 함께 현재의 동물원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시간의 끝 ds 13, 2003

시간의 끝 ds 13, 2003

기억의 환기

사진가 이주형은 여러 자료를 통해 습득한 정보들을 엮어가며 달성공원의 이미지를 그려보았을 것이다. 그가 달성공원을 처음 방문했을 때의 느낌은 역사적인 의미들을 잠시 묻어둔 채 어린 시절 추억을 샘솟게 하는 공원의 모습이었다. 잘 가꾸어진 화단과 넓게 펼쳐진 잔디밭, 울창한 나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동물원의 주인공들, 이 모두가 어린 시절 부모님의 손을 이끌고 혹은 소풍을 나섰던 공원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공원은 일상의 생활공간이 아니에요. 오랜 시간 머무르면서 생활하는 곳이 아니라 겨쳐 가는 곳이죠." 달성공원에 대한 그의 이야기다.

    언젠가 사진가 자신도 거쳐 온 공원, 굳이 이곳 달성공원이 아니라 할지라도 공원이 건네주는 그 풋풋하고 따스한 느낌은 잊혀지지 않고 다시금 샘솟아난다. 과거의 기억을 머금고 현실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에서 그는 생각했다고 한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공원의 모습이 진실일까? 아님 지금 서 있는 이곳의 모습이 진실인 걸까? 기억 속에 남겨진 그 모습들이 너무나 생생해서 기억과 현실의 경계를 의심해 보는 것이다.

    기억의 장면과 현실의 장면의 일치에서 비롯되는 의심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증거물이 필요했던 것일까? 사진가는 공원 구석구석을 거닐며 기억의 생생함을 의심하게 하는 광경들 앞에 카메라를 세운다. 

    어린 시절 유난히 커 보였던 큰 덩치의 코끼리가 선사하는 재롱에 구경꾼들을 즐거워했다. 과자를 손에 쥐고 코끼리의 코가 잽싸게 낚아 가는 순간을 기다리며 마음 설레 했다. 이제는 예전만큼 코끼리가 커보이지 않을 어른이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눈앞의 코끼리는 큰 덩치의 재롱둥이이다.

    무거운 카메라를 목에 매달고 기념사진 찍기를 권유하던 아저씨의 모습도 여전하다. 값을 치르고 어색한 웃음과 자세로 찍던 기념사진은 공원에서의 모든 추억을 한 장의 사진으로 함축하여 시간이 흐른 뒤 앨범을 펼쳐 사진을 들여다볼 때면 그 모든 순간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추억상자이다. 이제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카메라인지라 사진사 아저씨의 역할이 잠잠하지만 공원 안 아저씨의 존재는 추억을 따라 공원을 찾은 이들을 위한 배려처럼 느껴진다.

시간의 끝 ds 03, 2003

시간의 끝 ds 03, 2003

장소의 역사성을 찾아

사진가는 발길이 머물고 시선이 멈추는 곳에서 이런저런 기억 속 장면과 현실의 장면을 엮어간다. 크지 않은 공간 이곳,  달성공원에서 오랜 세월 많은 일들이 일어났을 것이다. 지금은 나무숲에 가려져 토성의 형태는 간과되기 쉽고, 공원 곳곳에 자리 잡은 기념비와 동상들이 의미를 상실한 듯 보이지만 분명 이곳은 다양한 시대를 거친 사람들의 저마다의 기억과 추억이 담겨져 있고, 사진가가 망문한 이 시점도 축적되어진 바로 역사가 새겨진 곳이다. 달성공원에서 사진가는 시간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교차되는 순간을 경험했다 한다.

    그는 '달성공원' 촬영을 시점으로 기억과 더불어 역사의 관점에서 장소에 접근하게 되었고, 이후 근대의 흔적들을 제시하고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하고 있는 '세트장'에서 새로운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장소의 역사성을 찾아나설 것이라고 한다.

    평일 늦은 오후부터 해질 무렵 공원을 거닐며 담아낸 사진들은 이 시간대의 광선이 주는 부드러움과 핀홀카메라의 아련한 분위기, 그리고 폴라로이드 필름에서 흘러내린 유제의 흔적으로 인해 기억의 환기를 도모해준다.

    사진가 이주형은 우연히 인연을 맺은 이곳 '달성공원'에서 나라와 도시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보고, 민족과 세대, 그리고 본인을 비록산 각 개인들의 기억을 되짚어보며 외관 너머에 존재하는 새로운 인식의 세계를 담아 기억과 역사가 어우러진 사진의 세계를 들어서 본다.

이경률 <저 아련한 기억의 풍경들> 아트인컬처 2003년 3월호

<아트인컬처 2003년 3월호>

저 아련한 기억의 풍경들  | Young Artist

이경률 | 사진평론가

언제나 그렇듯 어떤 작가가 나에게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면, 우선 난 사진을 만든 작가의 개인적인 상황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진 그 자체의 독립된 메시지로 보지 않는다. 이와 같은 의미 분석은 오늘날 우리가 오랫동안 잘못 길들려진 이미지 읽기의 가장 큰 오류이기도 하다. 정 반대로 난 언제나 사진을 그 사진이 있게 한 어떤 원인적인 것(생성)을 지시하는 지표로 본다. 그래서 난 이 작가가 왜 이러한 이미지를 찍었을까 라는 의문에서 출발하여 이미지의 결과보다 오히려 그 원인성을 이해하려 한다.

    언제나 그렇듯 또한 난 사진을 해석하지 않는다. 단지 거기서 저절로 회상되는 나의 경험적인 인상을 포착하려 할뿐이다. 왜냐하면 사진은 보는 순간 응시자의 것이지, 결코 다른 사람이 숨겨 놓은 암호해독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누구나 공통된 상징적 매개물이라 할지라도 사진은 근본적으로 응시자의 욕구와 경향을 무한대로 받아들이는 일종의 수신신호로 간주된다. 

경계, 어스름 시리즈, 2001

경계, 어스름 시리즈, 2001

보여주는 사진과 환기시키는 사진

사진은 단순히 대상을 그대로 복사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언제나 특별한 시각적 재현 기술을 요구하는 그림과는 달리 누구나 쉽게 찍을 수 있는 아주 쉬운 일이다. 그러나 예술 영역에서 이러한 복사적 기능으로 활용되는 사진은 사실상 극히 드물다. 우리가 대상이나 상황으로부터 경험하는 어떤 개인적인 느낌이나 인상을 재현하려 할 때, 사진은 그때 그 어떤 매체보다도 다루기 어려운 매체가 된다. 왜냐하면 그림과는 달리 사진에서 작가가 재현할 수 있는 유일한 있는 행위는 파인더 안에 들어온 대상의 선택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사진만이 가지는 유일한 개념적 특수성 즉 반박할 수 없는 과거 사실의 출현(ça a  été)인 동시에 표현 도구로서 사진을 가장 빈약한 재현 매체로 만드는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결과적으로 작가의 의도가 단순한 복사가 아니라면 거의 대부분의 경우 작가는 언제나 자신의 감정을 사진이 외시하는 이미지(탈-코드)에 숨겨놓는 사진적 장치를 실행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진적 장치에 있어 크게 두 가지 서로 다른 방식이 있다. 하나는 어떤 구체적인 의미를 보여주는 작가의 제스처이고 또 다른 방식은 무엇을 환기시키기 위한 사진적 행위를 들 수 있다. 예컨대 잡지기사와 시(詩)는 문맥 구조상 거의 같은 단어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그 구성과 읽기에서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언어화합으로 되어 있다. 잡지 기사는 단어 하나 하나의 나열에서 언제나 의미의 분명한 진술을 중심으로 이해된다. 반대로 시는 결코 단어의 단순한 조합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시는 조합된 단어의 의미들을 진술하는 것이 아니라, 연극이 끝난 후 느끼는 공허함과 같은 끈적거리는 무엇을 발산시킨다. 바로 거기에 애절한 시인의 노래가 읊어지는 것이다.

    같은 방법에서 볼 때, 다큐멘터리 사진과 순수사진 역시 분명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거의 같은 물리적 진행(광학적)으로 인해 시각적으로 읽는 방법이나 과정은 동일하다. 그러나 유일하게 다른 점은 작가의 재현 방식과 보는 방법이다. 다시 말해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보여준다"라는 것에 몰두하는 작가인 반면, 순수 사진가는 무엇을 “환기시키기를" 원하는 사진가이다. 사실상 위대한 사진가의 작품은 언제나 특별한 효과 없이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이 또한 환기하기에 충분한 그런 작품이 아닌가 ?

기억의 풍경, 코니 아일랜드, 1999

기억의 풍경, 코니 아일랜드, 1999

사진으로 쓰는 시인의 노래

작가 이주형이 사실상 거의 같은 주제로 보여준 일련의 사진 시리즈들 기억 풍경 시리즈(1999), 침묵의 여행 시리즈(1994) 등]은 뭐라고 정확히 언급할 수는 없지만 공통적으로 과거에 잃어버린 무엇을 은닉한 사진적 지표들 즉 “누설하는 사진들"이다. 그의 사진들은 흔히 다른 작가들이 거의 정형화된 목소리로 증언하는 지칭하는 사진, 보여주는 사진 또는 전달하는 사진이 아니라, 사진을 응시하는 각자에게 무엇을 환기시키는 사진이다. 바로 거기에 사진의 위대한 힘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주형의 사진은 시간의 흐름에 사라지는 사건의 시간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어딜 봐도 푼크툼 하나 없는 밋밋한 무시간의 무광에 있게 된다. 거기서 작동하는 “표현적 움직임(Le movement d'expression)"은 응시자 각자가 가지는 거대한 기억의 침수뿐이다.

    작가 이주형이 노래하는 사진적 언어는 공통된 문화적 실행에서 그가 살아온 경험과 사는 방식의 인덱스(지표)일 뿐이다. 그때 사진은 “보이는 것을 보라"가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발산되는 것을 보라"라고 말하면서, 애석함과 아쉬움, 후회와 욕구 혹은 무의식의 충동과 같은 작가의 경험적인 발산을 슬며시 관객 자신의 경험이 만드는 레미니센스로 나타나게 한다. 그의 사진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어떤 좋은 반사 이미지와 설명 불가능한 어떤 감(感) 그리고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인상, 그것들은 아마도 바로 이러한 사진적 발산이 야기 시키는 것들이다. 

    결국 그는 사진으로 시인의 노래를 쓰는 작가이다. 은유적이든 환유적이든 여하간 거기서 화합되는 무언의 메시지는 찍혀진 대상이 아닌 찍혀진 주제에서 야기된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는 언제나 결코 논리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무의미(non sens)에 있다. 사진이 표명하는 것, 그것은 감각에 의한 비구체적인 추상이다. 그것은 어떤 형태의 구조적인 것을 집어치우고 근본화 되고 추상화 된 형이상학적인 것, 다시 말해 우리의 경험과 일상에서 비록 형태는 알 수 없지만 그 존재를 무형으로 감지할 수 있는 “내재적 형상들(감각의 시뮬라크르)"이다.

홍순태 <이주형 사진전 '침묵의 여행'> 사진예술 1994년 12월호

<사진예술 1994년 12월호>

이주형 사진전 '침묵의 여행'

서남미술전시관 1994년 10월 17일 ~ 29일


홍순태 | 신구대 교수 

이주형은 연극영화를 공부했으나 후에 스틸사진에 관심을 두어 홍대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한 전문 사진인이다. 이미 그는 3회에 걸친 그룹전을 통해서 그의 사진의 방향과 추구하고자 하는 시각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오늘의 풍경사진은 진경산수의 서정적 풍경에 국한되지 않고 실로 다양하게 그 폭이 넓어지고 있다. 이제 웨스톤이나 앤셀 아담스의 사진은 먼 옛날의 고전이 되고만 시대이고 존 섹스톤과 같은 부류의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 그 명맥이 겨우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New Topographics'의 전시 이후 사진은 급변하여 서정적인 아름다운 정경에 접근하는 것에서 점차 멀어져 문명비평적 시각으로 많이 변했고, 그것도 직설적이 아닌 은유적인 시각으로 변모했다. 이제는 사진가 자신이 자연을 해석하여 재구성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주형의 '침묵의 여행'은 이러한 관점에서 분석할 때 현대풍경사진의 주조류 쪽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한 사진이다. 처음 사진의 도입 부분은 전혀 인간에 의해 침해당하거나 오염되지 않은 자연 때문에 자유분방하게 마구 자란 나무와 풀들이 복잡하고 무질서해 보이지만, 그것은 엄연한 자연의 질서가 존재하는 풍경이다. 이러한 자연스럽고 순수한 풍경이 점차 인간에 의해 변형되어 할퀴고 상처가 나기 시작하고 인간의 편의대도 변형하여 자연적 공간은 사라져가는 아쉬움에서 그의 사진은 막을 내린다. 이러한 사진의 순서적 배열로 인해 스틸사진이면서도 그의 전시작품을 순서대로 둘러보고 난 후에는 마치 한편의 명화를 본 것처럼 느끼게 하는 영상적 매력이 있다.

    이러한 센스는 역시 대학시절에 연극영화를 전공한 밑거름의 소산이 아닌가 생각한다. 흑백의 작화처리도 연조에 의해 어떠한 것은 깊은 섀도우에서도 명쾌하게 디테일을 부각시켜 풍경의 리얼리티의 재현에 손색이 없도록 했고 발색에 있어서도 차디찬 냉조보다는 온조의 색조를 재현하여 부드럽고 따듯함을 준다. 그의 사진에는 과장하거나 강하게 드러내는 외형의 부르짖음은 없으나 침묵 속에 서려있는 현실비판의 부르짖음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